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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칼럼] 나아무우느으을보오오오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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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무우느으을보오오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주서식지로 하는 동물 중에 나무늘보라는 흥미로운 동물이 있습니다. 나무늘보의 한국어 이름은 나무와 느림보를 뜻하는 늘보의 합성어인데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다른 언어도 이와 비슷하게 이름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어로는 나마케모노(なまけもの, 樹懶)라고 하는데 게으름뱅이라는 뜻이고, 스페인어 Perezoso도 나태함이나 게으름뱅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영어로는 Sloth라고 하는데, 이 역시 나태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나무늘보는 너무나 느리게 움직이는 동물입니다. 너무나도 움직임이 느려서, 나무늘보의 털에는 이끼와 녹조류가 서식하고 있고, 그 안에는 최대 900마리의 나방과 벌레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핏 생각하기에 이것들은 나무늘보의 삶에 해악을 줄 것이라고 보이지만, 사실 이끼류 등은 나무늘보가 나무속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이 있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좋은 보호색을 제공해 주고, 나무늘보의 털 안에 사는 곤충들도 사실은 나무늘보를 각종 기생충과 세균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나무늘보는 너무나도 느리게 살기 때문에 신진대사도 극단적으로 느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나뭇잎 3개 정도의 아주 적은 먹이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배설도 1주일에 한 번 정도 한다고 합니다. 또 아주 적게 움직이기 때문에 근육도 많이 없어서 실제 들어보면 생각보다 너무나 가벼운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약해 보이는 동물인데 나무늘보가 전력을 다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나무에 매달릴 때입니다. 왜냐하면 나무늘보는 거의 평생을 나무에 의지해서 살기 때문에, 나무늘보에게 좋은 한 그루의 나무는 삶의 터전이자 피난처이자,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구원의 방패이기 때문이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나무늘보와 나무와의 관계와 비슷해야 합니다. 훌륭한 한 그루의 나무가 나무늘보에게 의식주를 주고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언제나 큰 도움을 주시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 그 자체가 되십니다. 그래서 나무늘보가 나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 46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기만 하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힘과 도움을 주시고, 또한 우리가 살아갈 힘과 도움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와 주시길 기도하고, 이루어 주시길 기도하고, 힘 주시길 기도한 후에 아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와 함께 고난을 이겨내게 하시는, 우리의 삶에서 힘과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깨닫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필그림교회 성도님들도, 피난처를 주시는 하나님과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은혜가 더욱더 여러분의 삶속에서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태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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